카타콤(Catamob)이 뭐길래?
"카타콤? 그게 뭐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탈리아어로 뭔가 멋진 음식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로마 지하에 숨어있는 거대한 무덤이었다.
그런데 이 무덤이 보통 무덤이 아니다. 2000년 전 로마 시대, 기독교인들이 몰래 만든 지하 도시 같은 곳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신기하지 않나? 우리가 매일 걷는 로마 거리 밑에 이런 거대한 비밀 공간이 있었다니!
왜 지하에 숨어서 살았을까?
로마 시대에는 기독교가 불법이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잡혀가서 사자 밥이 되거나 검투사와 싸워야 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게, 그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하로 들어가서 몰래 교회를 만들고, 예배를 드리고, 죽은 사람들을 정성스럽게 묻어주었다. 마치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때 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처럼 말이다.
내가 직접 본 카타콤 이야기
산칼리스토 카타콤 - 첫 만남의 충격
첫 번째로 간 곳이 산칼리스토 카타콤이었다. 입구에서 가이드 아저씨가 "조용히 하세요, 이곳은 성스러운 곳입니다"라고 했을 때는 그냥 으레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좁은 통로 양쪽으로 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안에 2000년 전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여기는 교황들이 묻힌 곳입니다"라고 설명할 때, 나는 그냥 "와, 대박"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바티칸 교황청의 뿌리가 이런 지하 동굴에 있었다니!
프리실라 카타콤 - 감동의 순간
두 번째로 간 프리실라 카타콤에서는 정말 감동적인 장면을 봤다. 벽에 그려진 그림 중에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가이드가 "이것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가장 오래된 그림입니다"라고 했을 때, 감동이 밀려왔다.
2000년 전 어둠 속에서 촛불 하나에 의지해 누군가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 그 사람도 아마 아이를 키우는 부모였을 것이다. 박해받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 마음이 느껴졌다.
카타콤에서 본 놀라운 것들
암호 같은 그림들
카타콤 벽에는 정말 신기한 그림들이 많다. 물고기, 비둘기, 포도나무, 양... 처음에는 그냥 예쁜 그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두 암호였다!
물고기 그림 하나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세주"라는 뜻이 숨어있다니. 요즘 같으면 카카오톡 이모티콘 쓰는 것처럼, 그때는 이런 그림으로 서로를 알아봤다고 한다. 정말 똑똑하지 않나?
계급 없는 평등한 죽음
가장 놀라웠던 건 무덤의 모습이었다. 황제 친척이든 노예든 모두 똑같은 형태로 묻혀 있었다. 요즘 같으면 VIP 무덤, 일반 무덤 이렇게 나뉠 텐데, 여기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대우받았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진짜로 실천되었던 것이다. 20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니, 정말 놀랍다.
지하에서의 은밀한 예배
촛불 하나로 드리는 예배
상상해봐라. 지금처럼 화려한 교회당도 없고, 전기도 없고, 심지어 들키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예배를 드리는 걸.
그들은 죽은 사람들 무덤 위에서 빵을 나누고 포도주를 마시며 예배를 드렸다. 죽음 앞에서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편안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다.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
카타콤에는 단순히 예배만 드리러 온 게 아니었다. 서로 안부를 물어보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새로운 사람이 오면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요즘 말로 하면 '진짜 공동체'였던 것이다. 생명의 위험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니까 더욱 끈끈했을 것이다.
카타콤 방문 꿀팁
예약은 꼭 하세요!
카타콤은 보존을 위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특히 성수기에는 몇 주 전에 예약해야 한다. 나는 운 좋게 당일 예약이 가능했지만, 여러분은 미리미리 하시길!
주요 카타콤 정보:
- 산칼리스토: 가장 유명, 교황들 무덤 (8유로)
- 프리실라: 가장 아름다운 벽화 (8유로)
- 산세바스티아노: 카타콤 이름의 유래 (8유로)
- 도미틸라: 가장 큰 규모 (8유로)
준비물 체크리스트
- 따뜻한 외투: 지하는 연중 12-14도로 춥다
- 편한 신발: 계단 많고 통로가 좁음
- 카메라: 플래시 금지지만 사진은 가능
- 물과 간식: 투어가 1시간 정도 걸림
가는 법
로마 시내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118번 버스를 타고 아피아 가도로 가면 된다. 택시로 가면 편하지만 20유로 정도 든다.
카타콤이 내게 준 깨달음
진짜 믿음이 뭔지 알겠더라
카타콤을 보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 우리는 교회가 불편하면 다른 교회로 가고, 목사님 설교가 마음에 안 들면 뭐라고 한다.
그런데 2000년 전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켰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진짜 믿음, 진짜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의 변화
카타콤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죽음을 대하는 태도였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하는데, 그들은 죽음을 '잠시 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덤을 '잠자는 곳'이라고 불렀다. 죽음 이후에 다시 만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이 있으니까 죽음도 두렵지 않았던 것 같다.
카타콤 방문 후 추천 코스
아피아 가도 산책
카타콤 투어 후에는 아피아 가도를 걸어보자.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도로인데, 지금도 당시 돌길이 그대로 남아있다. 자전거 대여도 가능하니까 여유 있게 둘러보기 좋다.
로마 시내 교회 순례
카타콤을 본 후에 로마 시내 교회들을 가보면 또 다른 느낌이다.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산지오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등을 가보면 초기 기독교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맛집 탐방
카타콤 근처에는 로마 전통 요리를 파는 작은 레스토랑들이 많다. 관광지에서 벗어나 있어서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특히 카르보나라와 아마트리치아나는 꼭 먹어봐야 한다!
마무리하며
로마 여행 중에 우연히 알게 된 카타콤은 내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줬다. 단순히 관광지를 하나 더 본 게 아니라, 삶과 죽음, 믿음과 희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 바티칸, 트레비 분수만 보지 말고 꼭 한 번 카타콤에 가보길 추천한다. 아니, 강력 추천한다! 진짜 로마의 모습, 진짜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그 로마를 진짜로 이해하려면 지상의 화려함뿐만 아니라 지하의 깊은 역사도 알아야 한다. 카타콤은 그 깊은 역사를 보여주는 최고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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